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델타 포스 (문단 편집) === 델타 포스의 탄생 === || [[파일:external/lh5.googleusercontent.com/delta6.jpg|width=100%]] || [[파일:main-q55e6.jpeg.jpg|width=100%]] || ||<-2> 70년대 델타 포스의 훈련사진. 티타늄 방탄모, 발터 MPK 기관단총 등등 당시의 최고의 장비들로 무장했다. || 베크위스가 델타 포스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1975년에 포트 브랙의 육군 특수전학교[* 당시의 이름은 'U.S. Army Special Warfare School'. 그 후 이 특수전학교는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었던 [[존 F. 케네디]] 前 대통령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이름을 딴 존 F. 케네디 특수전학교 (John F. Kennedy Special Warfare Center and School)란 명칭으로 1982년에 변경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에서 근무 도중, 특수전학교의 지휘관인 로버트 킹스턴 소장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였다. 베크위스와 킹스턴 장군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데다, 킹스턴 역시 영국군 공수부대에서의 교환근무 경험이 있던지라 베크위스의 '미국판 SAS' 창설계획에 대한 지지자였다. 킹스턴은 자신과 친한 육군의 작전/계획 부참모총장 (The Army's Deputy Chief Of Staff For Operations And Plans)인 에드워드 마이어 장군을 통해 국방부에 베크위스의 SAS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면서 베크위스의 계획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이후 1976년 8월, 향후 델타 포스의 창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사건이 벌어진다. 킹스턴 장군과 베크위스 대령이 보병학교에서 윌리엄 듀푸이 장군[* [[공지전]]의 시초가 된 단기화력전 개념을 정립한 '''듀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에게 SAS의 우수함과 미국판 SAS의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게 되었는데, 듀푸이 장군 역시 육군 특전단이 지나치게 게릴라전에 쏠려있고, [[SAS(특수부대)|SAS]]와 같은 직접타격 작전을 상대적으로 외면한다고 생각하던지라 베크위스의 계획에 찬성하여 후일 델타포스라 불리게 될 '미국판 SAS'의 창설에 큰 도움을 주며 그 계획을 펜타곤까지 이끌어준다. 특히 듀푸이 장군은 이 과정에서 베크위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나 해주는데, 이는 새로이 창설될 특수부대가 그때까지 '''미군의 그 어느 특수부대도 수행하지 않는 새로운 능력, 즉 "대테러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1977년 육군 참모총장을 앞에 모셔둔 프레젠테이션에서 SAS스러운 새로운 특수부대 창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베크위스에게 드디어 새로운 특수부대의 조직과 장비 편제, 그리고 필요 예산안을 준비하라는 요구가 들어온다. 그러나 하필 이때 베크위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특수전학교 교육단장 킹스턴 장군이 제1특전단의 K분견대[* 대한민국의 주한미군으로서 상주하는 그린베레 병력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특전사의 각 여단들에도 '특전부대 연락관'이란 직책으로 상주 근무하고 있다.]로 전출되고, 이후 베크위스의 프로젝트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맥멀 장군이 새로운 교육단장으로 부임해온다. 맥멀 장군은 새로운 특수부대의 등장을 달갑잖게 여기는 기존의 특수부대 지휘관들의 말빨에 넘어가 베크위스와 기존 특수부대원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새로운 특수부대가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그린베레나 [[제75레인저연대|레인저대대]][* 베트남전때까지만 해도 레인저 부대는 지금의 제75레인저연대처럼 하나로 통합된 단일 부대였던 게 아니라, 여러 야전 사단 부대들에서 필요에 따라 소규모의 레인저 중대들을 자체 조직해서 운용해왔다. 베트남전 이후인 70년대 중반부터는 잔존 레인저 중대들 몇개를 모아서 만든 2개의 레인저대대가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75레인저연대'라는 단일 부대는 1980년대에야 비로소 창설된다.]의 견제를 받는데다가, 육군 참모총장의 공식 부대창설 재가는 떨어지지 않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어 베크위스의 염통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베크위스의 속을 박박 긁었던 것이 바로 '''블루 라이트'''라고 불리는 제5특전단 예하의 임시 대테러부대였는데,[* 다이 하드 2에 나오는 육군 대테러부대가 블루 라이트를 칭하고 있다.] 원래 창설 목적은 델타 포스가 대테러전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의 땜빵이었지만 맥멀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블루 라이트를 델타 포스를 대신하는 정식 대테러부대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블루 라이트도 해체 전까지 상당한 대테러전 능력을 쌓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delfosisyu/221017226058|이 블로그 내용 참조]].] 결국 블루 라이트는 델타 포스와의 경쟁에서는 밀렸지만, 그린베레로 원복한 뒤에는 베를린 A 분견대[* 임무는 베를린에 있는 공산권 스파이의 암살이나 납치 그리고 사보타주가 주 임무라서 대도시인 베를린이라는 특징 때문에 시가전과 실내전에서는 델타포스와 블루라이트와 비교를 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와 함께 각 특전단 직할 대테러 특임대인 "그린베레 CIF"팀으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지부진한 상황은 엉뚱하게도 [[서독]]에서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는데... 1977년 10월, [[GSG-9]]이 [[서독]]의 테러리스트 단체인 [[바더 마인호프]] (적군파)에 의해 납치되어 소말리아에 착륙한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대한 인질구출작전을 성공했다는 소식이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다. 이 소식을 통해 군 상층부에서 대테러전 능력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면서 베크위스의 델타 포스 창설계획은 다시금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결국 1977년 11월 19일, 델타 포스의 본격적인 '가동'에 대해 군 수뇌부의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진다. 베크위스의 15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판 SAS'이자, 후일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로 명성을 드높이게 될 델타 포스가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베크위스는 델타포스의 작전 성공을 보지 못하고 1981년에 대령으로 퇴역한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